한국 장로교 최연소 장로, 평서노회의 산증인 김봉아(金鳳芽) 장로
기사출처
사진) 기독공보 2000.12.02.

한국 장로교 최연소 장로, 평서노회의 산증인 김봉아(金鳳芽) 장로
 

김봉아 장로(1905-2000)는 평안남도 강서군 고창교회 출신의 신앙인으로, 한국 장로교 역사상 최연소 장로 임직과 최연소 총회 총대라는 기록을 보유한 평서노회의 핵심 지도자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북한 교회의 부흥과 해방 후 월남 교회의 재건, 그리고 미주 한인 교회 봉사에 이르기까지 70 평생을 장로로 헌신한 한국 교회의 귀감입니다.

 

1. 출생과 신앙적 성장
김봉아 장로는 1905년 평남 강서군에서 김성로(선친)와 조성진 권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보명학교 고등과를 거쳐 1921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21회) 졸업하였습니다. 숭실 시절 모친과 함께 서문밖교회를 섬겼으며,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연화동교회 김우석 목사의 장녀 김응복 양과 결혼하여 고창교회(일명 고챙이 교회)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 고창교회와 '최연소 장로' 기록
고창교회는 1896년 방기창 목사의 전도로 세워진 평서노회의 모체와 같은 교회입니다. 김봉아 장로는 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 430여 명의 학생을 양육하는 등 탁월한 교육 열정을 보였습니다.

장로 임직: 1932년 6월 26일, 27세의 나이로 장로 임직을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장로교 헌법상의 연령 규정 등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사례로, 한국 교회사상 개교회 '최연소 장로'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의 마지막: 1935년 11월 26일, 한국 교회의 영적 지도자 길선주 목사가 고창교회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김봉아 장로는 자신의 자택으로 길 목사를 모셔 마지막 임종을 지켰습니다.

 

3. 노회 및 총회 활동
김봉아 장로는 젊은 시절부터 행정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아 노회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서기 및 총대 활동: 1934년부터 평서노회 서기로 봉사하였으며, 1937년 제26회 총회부터 평서노회 서기 겸 총대로 참석하기 시작하여 1945년까지 매년 총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는 '최연소 총회 총대' 기록으로 이어집니다.

노회장 역임: 월남 후 평서노회의 재건에 앞장섰으며, 1956년에는 평서노회장으로 추대되어 노회를 이끌었습니다.

 

4. 월남 이후의 사회봉사와 교회 개척
1951년 1.4 후퇴 때 아들과 함께 월남한 그는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복음 전파와 사회사업에 매진했습니다.

제주와 부산: 제주 화산교회 전도 및 피난민 소장을 거쳐, 1953년부터 5년간 부산 '한나모자원' 총무로 근무하며 전쟁미망인과 영세민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교회 개척: 1958년 상경 후 서울 창신동에 낙산교회를 개척하였고, 1968년에는 송파구 가락동에 가락동교회를 개척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 미주 활동과 신앙적 유산
1975년 아들 김광열 장로를 따라 도미한 그는 LA 영락교회에서 명예장로로 추대되어 20년간 구역장과 장년부장 등으로 봉사했습니다. 1980년에는 그간의 사회봉사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밀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봉아 장로는 2000년 11월 1일, 96세를 일기로 소천하여 LA 영락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는 70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로 시무 기간 동안 한결같은 청지기 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다한 '20세기 한국 교회의 참된 종'으로 평가받습니다.

 

교차 검증 및 전문가 소견

연령 및 기록 검증: 『평서노회사 80주년』 인명록에 따르면 김재호 장로가 1935년 28세에 장로가 된 기록이 있으나, 김봉아 장로는 그보다 앞선 1932년 27세에 장립된 것으로 명시되어 있어 노회 내 최연소 기록이 확실시됩니다.

길선주 목사 관련: 일반 교회사 자료(길선주 목사 전기 등)에서도 길 목사가 1935년 평남 강서 고창교회 사경회 중 별세했다는 사실이 일치하며, 김 장로의 자택에서 임종을 맞았다는 추모 글의 내용은 당시 고창교회 당회의 핵심이었던 김 장로의 위치를 고려할 때 매우 신빙성이 높습니다.


노회 직함: 1950년대 평서노회 록에서도 '회장 김봉아'라는 기록이 확인되어 그가 장로로서 노회장 직무를 수행했음을 뒷받침합니다.

 

[사진] 정호찬목사와 함께한 김봉아장로(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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